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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커플이야기/쿠핑의하루

결국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가지 못 했다.

한달 전 쯤부터 시작되었다. 쿠팡의 직장 동료의 할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참 시작하고 있을 때 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부에서 시행하는 격리생활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을 여행다녀왔던 쿠팡의 보스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녀는 그래도 나이가 40대였고 그녀의 아들 역시 감염되었다고 했다.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온 그들이 감염되었다는것은 아마 일본여행일 거라고 쿠팡과 생각했다. 그녀는 감기걸린 목소리지만 현재는 많이 나아진 목소리였고,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완치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15분 떨어진 곳에 요양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방송에 나왔다. 거의 일주일 내내 이 병원 사진을 봤던 것 같다. 장보러 갈 때 가까운 곳이라 정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가까이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주에 종종 응급차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타고 가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요양원에 집단 감염이 나왔으니 그럴 수 있겠다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가 다가 올지 생각지도 못 했다. 

 

쿠팡의 외할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병원에 이송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몇일 내내 걱정이 되었지만 96세 고령에 치매까지 있으셔서 겁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쿠팡 어머니가 걱정되어 입원되었다는 말만 듣고 다시 물어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삼일전에 쿠팡 어머니가 외할아버지가 괜찮아 지셔서 이제 퇴원하실거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뻤다. 외할아버지는 강하시다며 우리는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키가 194에 말랐지만 항상 웃고 계셨던 그 분, 사실 그분은 정말 열심히 인생을 사셨던 분이다. 사실 사회적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사셨던 분이셨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영어를 구사하시면서 자신의 어렸을 때 사진과 성적표, 자기 인생의 모든것을 모으셨던 분이셨다. 벨기에서 태어나 자라셨고 그리고 어렸을 때 성적표를 모두 가지고 계셨다. 더 놀랐던 것은 모든 성적표에 적힌 숫자 '1' 소위 말하는 벨기에 엘리트 중에 엘리트셨다. 프랑스로 국적을 바꿨지만 어렸을 때 자신이 살았던 집의 사진을 보면서 그 집을 그리워 하셨던 분이였고,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셔서 표창장도 받으셨던 분, 어떻게 한국이 그렇게 발전을 빠르게 했니? 라고 물어보시고 다정 다감하게 말씀하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성격이 별난 외할머니가 신경질을 내면서 레스토랑에서 "당신의 손은 왜이렇게 차가워"하면서 속상함과 함께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셔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냥 보며 스윽 미소 지으며 "당신의 손은 따뜻하네"라고 다정하게 말하셨던 그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소위 말하는 천사같은 할아버지셨다. 4년전의 일이였지만 난 그분을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헤어지기전에 따듯한 포옹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분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예언했던 걸까? 이상하게 친할아버지도 아닌데 그날 헤어짐에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괜찮아 졌다는 소식에 너무 기뻤고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음날 갑자기 쿠팡의 어머니가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셨다고.............................그 소리를 들은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하늘이 원망 스러웠다. 

 

왜 이렇게 좋으신 분을 그렇게 데려가냐고.. 억울하고 원망 스러웠다. 나를 더 슬프게 했던건 사실 할어버지의 가족이야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쿠팡의 외할아버지는 흑사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고모댁에서 자라셨다. 소위 말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부모님을 잃으셨는데.. 이 나쁜 병이 외할아버지를 쓸쓸하게 데려갔다는 생각에 세상이 너무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대성통곡을 했다. 

 

이 날의 충격은 몇일 동안 아무일도 제대로 못하게 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돌아 가셨기 때문에 장례는 당연히 지금 치룰 수 없다는 것과 코로나 사태가 끝나야 할아버지의 유골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결국 우리는 코나바이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