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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커플이야기/쿠핑의하루

나는 한국에 너는 프랑스에 : 잠시만 안녕

거의 1년동안 나는 한국에 살고 있고 쿠팡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가 결혼을 했는데 그게 가능한 소리야?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제 내가 겪었던 프랑스의 나쁜 기억들을 다 풀어볼까 한다. 

난 프랑스에서 살면서 괜찮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를 겪는 모든 외국인들은 아마 다 그랬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도,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내가 천천히 느껴야 할 문화적 충격은 핵 미사일 급으로 다가왔고 버거웠다.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자고 쿠팡에게 말을 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 봤다. 

그래도 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쿠팡에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 쿠팡이 별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틔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쿠팡이지만 쿠팡은 내 말을 듣고 열심히 어떻게 보면 나에게 코로나를 옮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할 때 쯤, 회사에서는 누가 감염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래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메일이 왔고 자가 격리를 했다. 이때는 코로나 초기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봉쇄에 들어갔다. 

난 사실 이 상황을 예견했다. 프랑스는 코로나를 잘 대처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래서 그 때 겁이 많이 났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공수한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다녔고 위생관리에 철저하게 신경쓰며 살았다. 그리고 백신이 나올 무렵,

난 사실 백신이 반갑지 않았다. 믿을수가 없었고 과학적인 증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백신을 믿지 않는다. 

프랑스가 백신을 맞기 시작할 무렵, 사실 백신을 맞고 싶지 않았으나 프랑스의 사회주의 성향 때문에 마치 사람들이 사이비에 맹신하는 듯,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강제적이었다.

나도 피할수 없었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백신을 맞아야 할 상황이 왔다. 

바로 시댁을 만나는 일이었다. 시댁 식구들은 코로나의 심각성도 모르고 쿠팡이 코로나에 걸리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다. 난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코로나 때 결혼식을 했어야해서 집에 왔었는데, 손도 바로 씻지 않은 그들이었고 

시누이는 틈만나면 숨쉬기 힘들다면서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쉬곤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믿을 수 없었고, 또 다른하나는 바로 쿠팡의 할머니에게 코로나를 옮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코로나 백신을 만들 때, 임상실험시에 아시아 사람들에게 테스트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역시나 부작용이 심하게 왔다. 심장 두근거림으로 밤새 잠을 잘 수 없었고 가슴에 생기는 통증, 피가 잘 안통하는 느낌, 그리고 가슴이 엄청 커졌다.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왔다. 심장의 통증은 2달간 지속 되었고 심장 전문의를 만나봤지만 정상이란다. 

부작용이 엄청 심해 고생하고 있는 와중에 담당의사는 2차는 조금 기다려보자고 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또 발생했다. 시댁에서 2차를 4주안에 맞아야 하니 빨리 맞으라는 것이다. 

속으로 미쳤나 생각이 들었다. 시댁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쿠팡도 내가 부작용을 심하게 겪는 것을 보고 더이상 추가 접종은 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시댁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백신을 강요했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들 커뮤니티에도 이상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기 집에 오는 손님이 백신을 안 맞아서 오지 말라고 했다는 글이었다. 

프랑스 언론 자체에서 백신을 맞이 않은 사람은 잠재적인 사회의 악, 그리고 코로나에 걸린 사람 취급을 했다. 여기서 정말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겠지만 프랑스 언론에서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백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백신 부작용 때문에 응급실에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프랑스는 멀쩡하단 말인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백신 개발할 때 임상실험 대상이 서양인이라 그런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미국의 CDC 웹사이트를 내집 드나 들듯이 왔다 갔다 거리며 과학적 증거를 수집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화이자에서 백신부작용으로 심장에 문제를 줄 수 있다고 발표를 했고 인정을 했다. 하지만 이 뉴스도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강조되지 않았다. 

쿠팡과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쿠팡의 친적포함 모든 지식인이 모두가 백신을 무조건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부작용이 있던지 말던지 말이다. 프랑스의 "사회주의"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정말 지극히 이기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의 직업은 교수,의사,약사,엔지니어 소위 말하는 프랑스에서 고급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건가?

이렇게 백신을 안 맞은 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초기 코로나 때는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고 하니 "너 왜 독감보다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를 혼자 호들갑 떠냐고 " 그리고 코로나 백신때문에 "부작용이 있어도 백신을 맞야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쿠팡과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일이 거의 없었고 슈퍼마켓만 가는 정도였다. 우리의 삶의 주체는 우린데 점점 간섭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간섭에 지쳤던 나는 시댁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한국에 더 머물고 싶었던 이유는 시댁에서 받은 프랑스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양이 어마 했기 때문이다.

1년전 비행기 타기 전만해도 난 걱정을 해야했다. 바로 공황장애 때문이다. 평생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공황장애가 백신 부작용으로 나타났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지만 다행히 코로나 시대에 탑승 승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잘 올 수 있었다. 

결론은 시댁에 지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한국에 살면서 내가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힘들어하던 나를 지켜보던 쿠팡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것 같다고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충분히 쉬고 오라고했다. 

이렇게 나는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을 했지만 나를 위해서 한국에서 1년 반동안 쉬다 오기로 했다. 

쿠팡도 나도 우린 국제 장기연애를 많이 해봐서 괜찮을 거라면서 생각하고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시댁과 연을 끊었다. 시댁 이야기는 추후에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도록 하겠다. 

내가 시댁과 연을 끊은 이유는 딱 하나다.

"인생은 짦은 데, 더 이상 비상식적인 사람들과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기 싫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말대로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참고 살수 없었다. 그리고 그 참고사는 것이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 반년간 우린 국제부부이긴 하지만 따로 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쿠팡이 사랑은 비싼거야라고 하면서 한국에 두번이나 오갔고 나도 프랑스에 한번 가서 3개월간 있다가 오기도 했다. 

지금 나는 지친 내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